[독자 기고] 코로나19 비상시국
아이들의 등굣길을 비추고 학교 문을 열어준 ‘홀짝 등교제’
세상이 통째로 멈춘 것 같았던 2020년의 봄을 기억한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학교 문은 굳게 닫혔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교정에는 막막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교육 현장이 혼란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필자는 ‘홀짝 등교제’라는 하나의 제안을 세상에 던졌다.
■ 안전과 배움 사이, 외줄 타기 같았던 고뇌의 봄
개학은 다가오는데 감염의 위협은 전혀 잦아들지 않던 그해 봄이었다. 학교 문을 무작정 열기에는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됐고, 계속 닫아두기에는 배움의 공백이 너무나 무거웠다. 안전과 교육,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외줄 타기 같은 시기였다. 당시 화원중학교 교장이었던 필자 역시 매일 수업 현장을 걱정하며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마스크를 쓴 채 건넨 한마디가 가슴을 깊게 울렸다. “아이들이 딱 절반만 올 수 있어도 교실이 훨씬 안전해질 텐데….”
■ 차량 홀짝제에서 찾은 실마리, 전국 교실의 문을 열다
그 절박한 한마디는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있던 ‘차량 홀짝제’를 떠올리게 했다. ‘한 학급을 출석번호 홀수와 짝수로 나누어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을 병행한다면,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도 배움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은 곧 실행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의 안전과 학습권 모두를 지켜내겠다는 간절함이 ‘홀짝 등교제’라는 구체적인 정책 제안서로 피어났다. 진심을 담은 제안은 늦은 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님과의 긴박한 소통으로 이어졌고, 행정의 벽을 넘어 빠르게 정책화되었다. 교육부의 움직임도 신속했다. 곧이어 2020년 5월 7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님은 브리핑을 통해 “서울의 한 학교 교장이 홀수와 짝수 번호로 나누어 출석과 원격 수업을 병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학교나 지역 상황에 맞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를 공식 발표했다. 이 작은 아이디어가 마침내 전국 학교의 문을 다시 여는 결정적인 마중물이 된 것이다.
■ 멈추지 않는 현장의 발걸음,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
이윽고 교문이 열리고, 출석번호 홀짝으로 나뉜 아이들이 거리 두기를 지키며 교실로 들어서던 그날의 풍경을 필자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교실 안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배움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아이들은 비로소 다시 교정에서 미래의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위기의 순간에도 결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교육 현장의 사랑과, 그 간절함이 빚어낸 집단지성의 산물이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기술이 아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아이들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홀짝 등교제’가 그 시절 따뜻한 해답이 되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는 어떤 거센 파도 앞에서도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배움이 멈추지 않는 한, 현장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손기서 (전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