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뉴스칼럼] ‘이마고(IMAGO) 대화가 없는 가정’
“조용히 무너지는 아이의 자존감과 부모가 놓치고 있는 것”
상담실에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미 마음이 깊이 무너진 아이들이 찾아온다. 성적도 평균 이상이고 특별한 비행 문제도 없으며 부모와의 갈등을 크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특징을 보인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거나 괜찮아요”라는 말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소심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경우, 오랜 시간 자신의 감정과 선택이 존중받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라며 형성된 자존감 손상과 자기 결정감의 약화와 연결되어 있다.
[“착한 아이” 뒤에 숨어 있는 심리적 무기력]
한 중학생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상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모습이었지만, 아이는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보고 말수가 적었다. 부모가 상담을 요청한 이유는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의욕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흔한 진로 고민처럼 보였다. 실제로 청소년기에는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이와 단둘이 상담을 진행하면서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아이는 중요한 선택을 거의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학원, 공부 방식, 생활 습관, 친구 관계까지 대부분 부모의 기준 안에서 결정되어 왔다. 처음에는 ‘말 잘 듣는 아이’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표현하는 법 자체를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권위적 양육이 아이의 뇌에 미치는 영향]
두 번째 상담에서 아버지가 함께 방문했을 때, 아이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드러났다. 아버지는 매우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태도를 보였다. 상담 중에도 아이의 말을 자주 끊었고, “얘는 아직 잘 모른다”, “혼자서는 제대로 못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과 보호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뇌는 이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반복적인 통제와 비난은 아이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약화시키고, 결국 “나는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환경은 아이의 전전두엽 기능 발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전전두엽은 자기조절, 판단, 계획, 문제 해결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모든 결정을 부모가 대신하면, 아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기 결정 능력과 도전 행동이 감소하고, 무기력과 회피 성향이 강화된다.
[왜 청소년기에 문제가 폭발하는가]
권위적인 양육은 어린 시절에는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다. 아이는 말을 잘 듣고, 부모 기준에 맞춰 행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해야 하는 청소년기에 나타난다.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탐색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 온 아이들은 이 질문 앞에서 멈춰 버린다. 일부 아이들은 외적으로 반항한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경우는 겉으로는 순종적이지만 내부적으로 무기력해지는 경우이다. 부모는 “왜 갑자기 의욕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오랜 시간 누적된 정서적 억압이 청소년기에 드러난 것이다.
[이마고(IMAGO) 대화가 없는 가정의 특징]
이마고 대화법의 핵심은 상대의 감정과 관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적인 가정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다. 아이의 감정보다 부모의 판단이 우선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보다 “그건 틀렸어”가 먼저 나온다. 공감보다 지적과 해결이 중심이 된다. 이 환경에서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 결국 아이는 감정을 숨기고, 부모가 원하는 반응만 보여주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자기 자신과의 연결도 약해진다.
자존감은 칭찬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많은 부모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칭찬을 한다. 그러나 진짜 자존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존중받는 경험에서 형성된다.
“내 감정을 들어주는 경험”
“내 의견을 묻고 기다려주는 경험”
“실패해도 비난보다 지지를 받는 경험”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아이는 “나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반대로 반복적인 통제와 무시는 겉으로는 순종적인 아이를 만들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깊은 불안과 자기 부정을 남긴다.
[부모가 바뀌어야 아이가 살아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 마음대로 움직이는 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길을 대신 정해주면 아이는 실수를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을 살아가는 힘도 잃게 된다. 따라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통제가 아니라 관계적 안정감이다.
1. “왜 그것도 못 하니?” 대신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묻기
2. “내 말대로 해” 대신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말하기
3. 지적보다 먼저 공감하기
이러한 작은 변화가 아이의 뇌와 자존감에 전혀 다른 경험을 남긴다. 아이는 통제가 아니라 ‘이해’ 속에서 성장한다.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겉으로는 문제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부모이다. 부모의 권위는 두려움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진짜 관계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존중 속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아이의 자존감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칼럼 : 큰사랑심리상담센터 정지윤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