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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起源 / 윤의섭

기사입력 2022-11-26 오전 3:03:4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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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源 / 윤의섭
[원시인의 시로 여는 세상]

 

 






起源

                                             윤의섭

 

 

사위가 어두워질 무렵 장대비는 더욱 거세졌다

이 거친 필법으로 잔잔하던 저수지는 들끓는다

산비탈을 따라 비는 계속해서 덧칠을 한다

길이 지워지고 숲이 갇힌다

그제서야 풍경은 홀연히 살아나는 것이었다

뭉개진 얼굴로 물의 칼을 등에 꽂은 채

아니면 빗물을 다 받아 마실 듯한 기세로

하늘과의 경계가 지워진 산등성이가 꿈틀거리고

여명보다 희미한 눈을 뜬 폭포가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푸른 어둠 속에서 낚시꾼들이 솟아나더니 흐느적거리며

빗속을 헤엄쳐 간다

魚族은 다음 비가 쏟아질 때에야 나타날 것이다

이정표에는 雲中路라고 씌어 있지만

더 이상의 표지는 없다

내게 비 내리기 전에 살았다는 흔적도 없다

 

---------------------------------------------------------------------

 

원시인님, 우리는 가끔씩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아득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처럼, 고단한 현실의 벽 앞에서 때로 원초적 시원에 대한 동경의 꿈틀거림으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근원에 대한 동경은 어쩌면 모든 것을 리셋시키는 작업이며 또한 새로운 길의 출발 선상에 선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겠지요.

 

윤의섭 시인의 起源은 근원으로의 회귀와 시적 화자의 존재의 살아있음의 확인을 각인시키는 작품입니다.

 

저수지가 있는 어느 골짜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그 뿌연 골짜기의 모습을 시인은 거친 필법이라 명명합니다. 그 거친 필법에 그만 잔잔하던 저수지가 들끓는다라고 함으로써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라, 들끓어야할 모순된 현실이나 부조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내리는 비는 지금까지 있었던 길을 지우고 숲을 가두어 버립니다. ‘그제서야 풍경은 홀연히 살아나는 것이라는 말은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풍경풍경답지 못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가 더욱 내려 뭉개진 산등성이가 꿈틀거리며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희미한 폭포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저수지에 몸담고 있던 낚시꾼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뜹니다. 장대비가 만들어낸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풍경, 어쩌면 이것은 시원이며 근원이며 기원의 시공간입니다. 이 시공간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고 싶은 마음, 그것을 기원으로 시인은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정표에는 雲中路라고 씌어 있고, 더 이상의 표지가 없는그 아득한 시공간이지만 시적 화자는 그 시공간이야말로 살아있는 세계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 내게 비 내리기 전에 살았다는 흔적도 없다 -

 

그렇습니다.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비 오기 전의 세계는 진정 살아 있는 삶이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장대비가 쏟아질 때, 모순과 부조리의 팍팍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자연의 풍광을 이야기하다 마지막 행에서 급선회한 이 한 구절이 시인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겁니다. 다시 첫 행으로 돌아가 연결시켜 보죠. ‘사위가 어두워질 무렵 장대비는 더욱 거세졌다는 진술은 의미심장한 말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어두워질 무렵 장대비가 내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위가 어두워지자 장대비는 더욱 거세게 퍼부었다라고 읽혀지는 것은 나만의 독법일까요? ‘어두워져 가는 사위위로 장대비가 쏟아져 잔잔하던 저수지가 그제야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온 산골짜기가 몽환적으로 바뀌면서 존재의 거룩한 모습들이 하늘과 맞닿습니다. 불의와 부조리라는 저수지를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시인의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시 가끔씩 이 팍팍한 세상을 씻어버리고 새로움을 건설하는 장대비가 그리워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소설적 기법인 진술(1,3,5,10,11)과 회화적 상상력(전체)을 가미하여 우리의 아득한 근원적 미래 속에서 다시금 기원을 꿈꾸는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작품으로 다가오는 시입니다.(*)


 


 



 

 

경산인터넷뉴스(ks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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