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종합 > 강서뉴스

정혜숙 시인 첫 번째 시집

‘어느 봄날, 나를 보다’대양미디어 발행

기사입력 2022-07-24 오후 4:44:44 입력
페이스북 트위터

정혜숙 시인 첫 번째 시집

어느 봄날, 나를 보다대양미디어 발행

 

 

정혜숙 시인은 첫 번째 시집을 내면서 묵정밭에 내버려 두었던 자신을 발견하고 호미로 밭을 일구듯 시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저무는 길목까지 함께 가며 남은 생을 지켜줄 든든한 버팀목 같은 시.

 

 

 

 

시인은 잔잔한 미소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함께 지나온 온갖 것들을 시어로 불러 모은다. 친구도 있고, 아들과 딸, 남편, 돌아가신 어머니, 또 아버지, 곁에서 피고 지던 꽃들과 몸을 휘감아 불던 바람, 나직나직 속삭이며 존재를 알린다.

 

이책의 제목이 된 어느 봄날, 나를 보다의 배경은 경로당의 나른한 오후다.

 

 

▲ 정혜숙 시인

 

 

세월을 비껴가지 못한 노인들이 앉아 화투를 친다. 골다공증에 백내장을 앓아도 백 원짜리 동전 몇 개 쓸어 모으며, 아픔도 잊고 목련처럼 벙긋벙긋 웃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정겹다.

 

-어느 봄날, 나를 보다 / 정혜숙

 

해나른한 경로당의 오후

머릿결 성크름한 할머니들

화투를 치고 있다

 

세월에 끄덩이 잡혀

허겁지겁 달려온 삶

보상이라도 받듯

 

주어진 패 촘촘히 펴들고

끗수 올리는 단순한 기쁨에

십 원짜리 동전은 효자가 된다

 

그 성역

기웃거리는 나는

 

골다공증에 꽃샘바람 시리고

백내장 앓고 있는

뿌우연 허공에 목련 하나,

봄을 터뜨리고 있다.

 

 

또 다른 시 살다 보니는 인생의 후반으로 접어든 사람이라면 대게는 느꼈음직한 이야기다. 나이 먹으면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다 하여, “내 몸이 종합병원이여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정형외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등등 가볼 곳도 많고 먹을 약도 점점 많아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인은 살갑게 어르면서 동행할 친구쯤으로 여기겠다 한다.

 

- 살다 보니 / 정혜숙

 

세월의 무게를

껴안고 살다 보니

정형외과 의사가

척추 엑스레이를 보여 주며

애매한 표정으로

물리치료증을 떼어 준다

신경과 의사는

혈관질환약을

죽는 날까지 먹으라 하고

난청 진단을 하며

보청기를 해야 한다는

이비인후과 의사

 

생의 황혼이 오면

소리 없이 찾아드는 불청객들과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살갑게 어르면서 동행할 일이다

 

 

동창회에는 세월이 불러오는 그리움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찌 그리 옛 모습 그대로 인지, 지난 세월을 못 느끼다가 불현듯 주름진 얼굴이 보일 때가 있다. 왠지 짠해지는 그믐달같이 희미한 모습, 시인은 그 모습에서도 옛날을 더듬어 찾아낸다.

 

- 동창회 / 정혜숙

 

흩어졌던 깨복쟁이들

모교 운동장에 모였네

불현듯 헤아려 보니

우리 고갯길 많이도 걸어왔네

푸른 꿈 꾸던 젊음

세월과 맞바꾸고

주름진 얼굴 펄럭이는

현수막 아래에서

그믐달 빛처럼 희미한

옛날을 더듬고 있네

 

 

어머니의 옷은 정혜숙 시인의 시집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다. 비단 정시인 뿐이겠는가! 나이 들어 부모님이 연로하시거나, 부모님을 여읜 사람이라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기억들. 잘 해드리지 못한 것만 같아 후회가 되는 일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님의 옷을 품에 안고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한 듯하다. 변변히 옷도 사드리지 못한 일, 지하철 한 번 태워드리지 못한 일, 돌아가신 뒤, 옷 한 벌을 어머니인 듯 모시고 와 덩그러니 옷장 속에 걸어 놓고 가끔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열어 보고 또 보리라. 어머니의 옷에서 오래오래 향수를 느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어머니의 옷 / 정혜숙

 

장롱에 두고 가신

어머니의 옷

꽃무늬가 찍혀있는

진분홍빛 옷

 

한 번도 사드리지 못한 내가

보자기에 싸안고 집으로 온다

생전에 태워드린 적 없는 지하철을

어머니의 옷이 탄다

 

너희 집에 내가 왜 가냐

하시던 어머니는

먼 곳으로 가고

어머니의 옷만 왔다

 

장롱에 걸어 놓은

어머니의 옷

문을 열면 방향제처럼

어머니 냄새가 난다

 

 

 

 

 

정혜숙 시인은 책을 내면서, “부족한 글에 격려를 넣어주신 김종상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표하며, 출간을 주선해 준 가산문학회 홍재숙 회장에게도 감사한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함께 문학의 길을 걸으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인사에 담겨있다.

 

 

 

 

정혜숙 시인의 지나 온 세월이 녹아 있는 한 권의 시집에서 어느 날 문득 바라보게 될 우리를 발견한다.

 

 

강서뉴스 류자 기자

최근기사

네티즌 의견28
내용은 200자 이내로 적어야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글은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스팸방지코드  )
의견
쓰기

  • 정혜숙 시인
    2022-07-24 오후 7:46:20
    어쩜 기사를 이렇게 잘 쓰시나요. 시보다 기사가 더 감동입니다 문학을 통해 좋은분들을, 더구나 류자 기자님을 만나 정말 기쁩니다 기자님,그리고 홍재숙 작가님, 김종상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강서주민
    2022-07-24 오후 6:53:45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진실하고 깊이 있는 시어에 공감합니다.
  • 홍재숙 소설가
    2022-07-24 오후 5:57:38
    류자 기자님 맛깔스럽게 잘 쓰셨습니다. 정혜숙 시인님은 가산문학회 회원으로 묵묵히 공부하시어 귀감이 되는 분입니다 출간을 축하드리며 시집이 널리 읽혀지기를 바랍니다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인물

  1. 한상숙
  2. 김태우
  3. 소재진
  4. 박국인
  5. 백운기
  6. 김용제
  7. 이기재
  8. 류 자
  9. 김성태
  10. 권오륜
  11. 김광수
  12. 신낙형
  13. 구성율
  14. 문진국
  15. 강미선
  16. 장세일
  17. 강미석
  18. 박경숙
  19. 박헌숙
  20. 김동기
  21. 송훈
  22. 장준복
  23. 지현경
  24. 정연석
  25. 신두업
  26. 안길해
  27. 임복순
  28. 류찬열
  29. 이종수
  30. 이상국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인물은 독자들이 기사인물에 대한
클릭수(읽기)가 실시간으로 적용된 것입니다.

최근 가장 많이 본 기사